자료실

부천에 문학인들

펄벅기념관


 

 

부천에는 이곳이 고향이거나 이곳에서 오래 살았던 문학인들이 있다. 모두 근현대 문학에 큰 발자취을 남긴사람들이다.`논개`의 변영로(1897~1961)는 부천이 고향이며 `향수`의 정지용(1902~?),`원미동사람들`의 양귀자(1955~),`대지`의 펄벅여사(1892~1973),동요 `자전거`의 작사가 목일신(1913~1986)은 부천에 오랫동안 살았다 지금도 이들이 남긴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여름 방학을 맞은 자녀들과 함께 찾아가 이들의 발자취를 흝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논개`의 작가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 . 아, 강낭콩보다도 더 붉은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시 `논개` 일부분]

 

우리에게 친숙한 시 `논개`를 쓴 변영로의 고향은 오정구 고강동이다. 그의 호인`수주`는 고려 시대 부천의 지명이다. 60년 넘게 부천에 살면서 민족의 절개와 지조를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현재 고강동 생가에는 푯말이 세워져 있고 부천시청 앞 중앙공원에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부천시는 그를 기리기 위해 역곡동~고강동 5.6km를 수주로로 명명했으며 고강동 수주로 끝에 동상과 시비를 만들었다. 매년 10월 수주 문학제가 열린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인 시인 정지용은 1943년 부천에 내려와 3년간 살았다. 일제가 서울을 강제로 떠나게 하자 자신의 고향인 충북 옥천과 마을 분위기가 비슷한 부천을 택한 것이다. 당시 그가 살던 소사본동 앞에는 개천이 흘렀다고 한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특히 부천에 천주교를 뿌리내리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인천교구를 찾아가 지원을 요청하고 손수 벽돌을 쌓아 소사성당이 탄생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가 머물렀던 집 앞에는 `정지용 선생이 시심을 키우던 곳`이라는 기념푯말이 세워져 있다.

 

♣동요`자전거`작사한 목일신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 릉....`

 

동요`자전거` 작사가인 목일신은 1960년부터 26년간 소사구 범박동에 살면서 400여편의 동요를 지어냈다.`자전거` 노래비가 중앙공원에 있다.

 

♣1980년대 부천을 보여주는 `원미동사람들`

 

원미구청 앞에는 `원미동 사람들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소설`원미동 사람들`의 내용 그대로 시골에서 도시로 변화해 가는 1980년대 원미동의 모습을 조각상으로 재현해 놓았다. 소설의 등장 인물인 강노인, 김반장,원미동 시인등을 만나 볼 수 있다. 소설가 양귀자는 1980년대에 부천에 살면서 당시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인 원미동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원미구 일대는 올해 뉴타운 개발 지역으로 지정돼 몇년 후면 그나마 남아있는 정겨운 모습들도 사라질 것 같다.

 

♣미국인의 한국 사랑이 가득한 펄벅기념관

 

소사구 심곡본동 펄벅기념관에 가면 미국인 소설가 펄벅 여사의 문학관과 한국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문한 코너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대지`를 비롯해`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새해`등 40여 권의 책이 진열돼 있다. 펄벅여사는 구한말에서 광복까지의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에서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같은 나라"라고 칭송했다. 그는 1967년 소사희망원을 세워 혼혈아를 돌봤다. 관람은 무료 고휴일 다음날과 월요일은 휴관이다.[전화: 668-7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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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 2010-09-25 13:42:05